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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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3층으로 가려는 할머니는 왜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을까?

UX에서 자주 사용하는 명제 중 하나는 ‘사용자 행동은 사람과 환경 사이의 함수‘라는 것입니다. 2012년 10월에 쓴 이 을 보면 엘리베이터에서 제공하는 UX가 얼마나 복잡다단한 것인지 공감할 수 있는데요. 최근에는 많은 엘리베이터들이 밖에서 층을 선택하면, 타야 할 엘리베이터를 A, C 이렇게 안내하고 그 엘리베이터를 탄 이후에는 열림, 닫힘, 비상버튼만 누를 수 있습니다.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해도 일단 문이 열리면 내린 후에 다시 이동해야 하죠. 누군가는 편하다고 하겠지만, 누군가는 불편하고 답답하다고 느낍니다.

디자이너가 설계한 모형에 따라 시스템을 구축했을 때 사용자가 스스로 정한 모형과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사용자들이 올바른 사용자 모형을 형성할 수 있는 단서, 충분한 정보값을 ‘시스템 이미지’로 형상화해야 합니다.

제가 11월에 읽은 글 중 가장 흥미로웠던 엘리베이터 UX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디자인을 할 때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멘탈 모델이 사용자의 실제 멘탈 모델과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가만히 생각해 봄직합니다.

할머니는 1층에서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습니다. 뒤따라간 저자는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가 오자 일단 탔습니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할머니는 지하층이 아닌 3층을 누르셨습니다. 저는 4층에 가려고 했고 4층을 눌렀죠. 엘리베이터는 할머니가 누른 내려가는 버튼에 따라 명령을 소화하기 위해서 문을 한 번 열고 닫았습니다.

  • 할머니: 이 망할 놈의 엘리베이터가 왜 안 올라가고, 이 난리여!
  • : (망설이다) 할머니가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시고 반대로 올라가시는 3층을 누르셔서 그러세요.
  • 할머니: 그래? 난 엘리베이터가 3층에 있길래, 내려오라는 뜻으로 그 버튼을 눌렀는데?

그러니까 할머니는 올라가고 싶을 때 올라가는 버튼을 누른 게 아니라, 현재 실시간 위치를 확인하고 내가 있는 위치로 엘리베이터를 이동시키기 위해 버튼을 누른 겁니다. 가끔 운이 안 좋은 날에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가 올라가시겠지만, 그날도 앞으로도 큰 문제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돌아다니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