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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를 깎는 사람

“UX 리서처가 뭐예요?” 가장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한 요즘 제 대답은 ‘깎는 사람’입니다. 윤오영 님이 쓴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을 중3 기말고사 때 처음 읽었습니다. 무뚝뚝하게 하루 종일 방망이를 깎는 노인. 첫인상은 답답한 꼰대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빠르고, 효율적인 게 미덕이라 여겼기 때문일 겁니다. 차 시간은 이미 늦었고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한 채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라는 주인공의 말에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으면 되나?”라고 대답한 노인은 방망이 하나 만드는데 한나절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어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대충 다 깎았으면 다음 방망이를 깎아서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낫지, 시장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작품이 장인정신과 전통의 숭고함을 강조한다고 가르치셨죠.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도 다행히 고집스러운 노인에 대한 기억은 남았습니다.

UX 리서치. 저는 이게 참 ‘방망이를 깎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방망이 손잡이를 정교하게 다듬어 손에 쥘 때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일. 머리는 마늘을 더 쉽게 빻도록 모양을 만드는 일. 손잡이는 부드럽게, 마늘이 닿는 부분은 둥글지만 거칠게 깎는 일. 쓸 만한 방망이를 만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쓰다 관둡니다. 고객이 이탈하는 거죠. 다른 방망이를 찾거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고무망치를 찾다 이내 기계로 갈아버릴 겁니다. 재촉한다고 끝내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들여서 깎고 다듬어서 오래 쓸 수 있는 방망이를 깎는 일. 여기서 방망이는 제품이고, 방망이를 깎는 일은 UX 리서치와 빼닮았습니다.

윤오영 님 『방망이 깎던 노인』 ©범우사, REDBUSBAGMAN
윤오영 님 『방망이 깎던 노인』 ©범우사, REDBUSBAGMAN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이게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까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차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차 시간이 빠듯해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 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고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방망이는 다 깎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와야 하는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 배가 너무 부르면 힘들어 다듬다가 옷감을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가 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대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숙지황을 사용하면 보통 것은 얼마, 윗길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 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낸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채국동리(동쪽 울 아래에서 국화 꽃을 따다가)하다가 유연견남산(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북어를 방망이를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10,000호의 다듬이질 소리)"이니 "위군추야도의성(그 사람을 위해 다듬이질 하는 소리)"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 범우사 –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